로그인
회원가입
수도회
설립자
역사
영성
양성
재속 전교가르멜회
오시는길
사도직
사도직
세계속에서
젊은이 사도직
성소방
청년기도모임
피정의 집
서울 영성의집
부산 청원소
JPIC
정의 평화 창조보전
연대
나눔자리
가족지
명인 글방
콩콩이 그림방
수녀님들 그림일기
게시판
사진방
Menu
저서 이어쓰기
HOME
/
저서 이어쓰기
제목
작성자
강명희 안나
비밀번호
<span style="font-size: 12pt;"><strong> </strong></span><br /><p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2pt;"><strong> "덕행학교"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개요 및 변론</strong></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font face="돋움"><span style="font-size: 12pt;"> 1854</span></font><span style="font-size: 12pt;">년 이비사</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0pt;"><span style="font-size: 12pt;">*</span></span><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 덕행학교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과 청중들에게 맞게 여러 방식 중에 한 가지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단지 4년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드는 사건들에 대해, 역사에 호소하여 진실의 증거와 증언으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인 세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증인들을 저는 부를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단 한번만이 아니라 모든 주일에 2년 반동안 목격했습니다. 내가 소개하려는 그 수천 명의 증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 증인들이 역사이고, 그리고 그것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으로, 내가 실제로 본 진실 하에 그리고 모든 구체적인 특징 즉 덕행학교의 역사에 설명하는 것입니다.</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2. 나는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직분에로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 받고 1851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님께 갔습니다. 사제로서의 신임장을 받고 이제는 노인이 된 산 아구스틴 본당신부를 보좌하는 역할로 앞서 말한 그 직분에 자원했습니다. </span><br><p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2pt;"> 방밥도 형식도 없이 가르치는 것은 구상도 하지 않고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는 마치 지정된 장소에 자재만 산더미 같이 쌓아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육 계획을 정리하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3. 모든 주일에 한 시간 동안 그리스도교 교의를 가르치고, 그리고 이후에 강론을 했고, 이런 목적을 위해모든 교회 행사에서 통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 행사는 오후에 해야 했고, 복음 선포의 직분에 따른 사제의 의무로서 수행하는 그 목적으로만 1851년 11월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1851년 말에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852년까지 저 혼자 일을 했습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교의를 가르친 다음 강론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특별한 동기로 인해 덕의 개념 아래 그리스도교 교의 전체를 편집하고, 덕행 교리서는 첫 시간에 교재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4. 그러므로 수업 시간에는 교리문답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청중들 중에서 몇몇 사람이 질문에 대답을 하겠다고 자원했으며, 여기에 기반하여 두 학급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반은 그날 배운 과를 암기하고 암송하는 어린이 반이고, 다른 반은 그날 배운 동일한 교의에 대한 설명에 대답을 하며 이 때 생각한 어려운 문제점을 제시하는 반이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5. 그 때에 그리스도교 윤리와 관련된 교의를 제안하고, 설명하는 중간에 성가를 부르고, 그 다음 윤리 강의를 하고 이같은 교의의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견고한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덕행학교의 처음 1년 과정이 끝나고 나서 계속 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는 내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계속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경우에 수업 형식과 방식 그리고 형태를 자유롭게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6. 1853년 2년째로 접어들면서, 내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교리문답식 수업은 나의 책임이었고, 강론은 이 도시에 있는 다른 여러 연설가들이 맡았습니다. 그 해 중반부터 1854년 동안 수업은 다른 형식을 취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수많은 그리고 중대한 이유로 인해 수업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부분은 그리스도교 교의를 가르치고 둘째 부분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입증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7. 첫째 부분은 항상 동일했으며, 둘째 부분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내가 한 시간 동안 교의 수업을 한 후에 강론을 하기에는 매우 피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사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스러워, 가톨릭 종교의 믿을 수 있는 동기와 관련된 교의 전체를 연중 52주간에 해당하는 52개의 요점 또는 명제로 편집했고, 여기에서 두 번째 덕행 교리서를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교의에 대하여, 사제가 되기를 갈망하는 신학생들 중에서 선별하여 특수반을 만들고 이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우선 명제를 설명하고 오류와 잘못된 원리를 제시하여 그것을 해결하게 하고, 제안된 교의를 바탕으로 하여 제가 간략한 강의를 하고 수업을 끝마쳤습니다.<br><br><br> 8. 이것이 바로 덕행학교입니다. 3년 반 동안 매 주일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바르셀로나 시민 전체가 지켜 보았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내용에 대해 이 사람들이 알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흉측하고 포악한 중상모략으로 공격을 받았기에, 지금이야 말로 공격받을 수 있는 모든 면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br><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 /></span><br><p align="left"><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strong> </strong></span><br /><p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2pt;"><strong> "덕행학교"에 대한 간략한 역사적 개요 및 변론</strong></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font face="돋움"><span style="font-size: 12pt;"> 1854</span></font><span style="font-size: 12pt;">년 이비사</span><span lang="EN-US" style="letter-spacing: 0pt; font-family: 돋움; mso-ascii-font-family: 돋움; mso-font-width: 100%; mso-text-raise: 0.0pt;"><span style="font-size: 12pt;">*</span></span><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 덕행학교는 지금의 시대적 상황과 청중들에게 맞게 여러 방식 중에 한 가지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단지 4년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를 만드는 사건들에 대해, 역사에 호소하여 진실의 증거와 증언으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증인 세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증인들을 저는 부를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단 한번만이 아니라 모든 주일에 2년 반동안 목격했습니다. 내가 소개하려는 그 수천 명의 증인들은 내가 거짓말을 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 증인들이 역사이고, 그리고 그것은 가장 최근에 일어난 사건으로, 내가 실제로 본 진실 하에 그리고 모든 구체적인 특징 즉 덕행학교의 역사에 설명하는 것입니다.</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2. 나는 복음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직분에로 하느님께로부터 부르심 받고 1851년에 바르셀로나의 주교님께 갔습니다. 사제로서의 신임장을 받고 이제는 노인이 된 산 아구스틴 본당신부를 보좌하는 역할로 앞서 말한 그 직분에 자원했습니다. </span><br><p align="left"><span style="font-size: 12pt;"> 방밥도 형식도 없이 가르치는 것은 구상도 하지 않고 설계도 없이 건물을 짓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는 마치 지정된 장소에 자재만 산더미 같이 쌓아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육 계획을 정리하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3. 모든 주일에 한 시간 동안 그리스도교 교의를 가르치고, 그리고 이후에 강론을 했고, 이런 목적을 위해모든 교회 행사에서 통상적으로 했던 것처럼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이 행사는 오후에 해야 했고, 복음 선포의 직분에 따른 사제의 의무로서 수행하는 그 목적으로만 1851년 11월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1851년 말에 그리고 그 다음 해인 1852년까지 저 혼자 일을 했습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고, 교의를 가르친 다음 강론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특별한 동기로 인해 덕의 개념 아래 그리스도교 교의 전체를 편집하고, 덕행 교리서는 첫 시간에 교재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4. 그러므로 수업 시간에는 교리문답 방식으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청중들 중에서 몇몇 사람이 질문에 대답을 하겠다고 자원했으며, 여기에 기반하여 두 학급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반은 그날 배운 과를 암기하고 암송하는 어린이 반이고, 다른 반은 그날 배운 동일한 교의에 대한 설명에 대답을 하며 이 때 생각한 어려운 문제점을 제시하는 반이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5. 그 때에 그리스도교 윤리와 관련된 교의를 제안하고, 설명하는 중간에 성가를 부르고, 그 다음 윤리 강의를 하고 이같은 교의의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견고한 것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것이 덕행학교의 처음 1년 과정이 끝나고 나서 계속 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는 내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계속 복음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경우에 수업 형식과 방식 그리고 형태를 자유롭게 수정하고 변경할 수 있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6. 1853년 2년째로 접어들면서, 내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교리문답식 수업은 나의 책임이었고, 강론은 이 도시에 있는 다른 여러 연설가들이 맡았습니다. 그 해 중반부터 1854년 동안 수업은 다른 형식을 취했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수많은 그리고 중대한 이유로 인해 수업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부분은 그리스도교 교의를 가르치고 둘째 부분은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입증했습니다.</span><br><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span style="font-size: 12pt;"> 7. 첫째 부분은 항상 동일했으며, 둘째 부분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내가 한 시간 동안 교의 수업을 한 후에 강론을 하기에는 매우 피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사들에게 폐를 끼칠까 염려스러워, 가톨릭 종교의 믿을 수 있는 동기와 관련된 교의 전체를 연중 52주간에 해당하는 52개의 요점 또는 명제로 편집했고, 여기에서 두 번째 덕행 교리서를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교의에 대하여, 사제가 되기를 갈망하는 신학생들 중에서 선별하여 특수반을 만들고 이들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우선 명제를 설명하고 오류와 잘못된 원리를 제시하여 그것을 해결하게 하고, 제안된 교의를 바탕으로 하여 제가 간략한 강의를 하고 수업을 끝마쳤습니다.<br><br><br> 8. 이것이 바로 덕행학교입니다. 3년 반 동안 매 주일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여 바르셀로나 시민 전체가 지켜 보았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내용에 대해 이 사람들이 알기에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가장 흉측하고 포악한 중상모략으로 공격을 받았기에, 지금이야 말로 공격받을 수 있는 모든 면을 바라봐야 할 때입니다......<br><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 /></span><br><p align="left"><br /><span style="font-size: 12pt;"> </span><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