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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조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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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2pt;">" 학교"에 대한 바르셀로나 주교관의 교회 법원에 출두한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의 진술 내용</span></span><br /><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854년 4월 6일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 각하의 명령에 따라 즉시, 빌야 데 그라시아의 솔레(Sole de Villa de Gracia)가에 거주하며 42세라고 자신이 말한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가 출두하여 규정된 방식에 따라 질문한 내용에 대해 진실만을 말하기로 법정 선서를 했다. 그리고 덕행 학교의 교장직을 맡았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그렇다고 말했다.</span><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2.앞서 언급한 학교에서 가르친 교의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의는 덕행 교리서의 내용과 동일하며 주교와 시당국의 승인을 받아 인쇄하였고 산 아구스틴 성전에서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것을 모든 바르셀로나 시민이 증언할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3.덕행학교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교의를 전파했거나 또는 여왕폐하의 정부에 맞서는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공공질서에 반하는 교의를 전파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언제나 사랑, 충실, 공경 그리고 모든 관계당국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쳐 주입 하면서 항상 관계당국의 가장 준엄한 규칙을 지지했으며,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사회 질서 안에서 각 사람에게 정해 주신 주인과 군주, 이외 정상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강조했다. 각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상태에서 더 높이 오르고자하는 갈망과 취향을 자제하고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면서 자신을 성화하도록, 충족할 때까지 이 교의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둘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항상 성전에서 부적합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말을 삼갔고, 교회 전례서에 따라 여왕폐하(하느님께서 항상 지켜주시기를)의 건강을 위한 청원기도에 대해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하엿다.이것은 특별한 동기가 있을때 했고, 공적으로 했던 몇 가지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다고 했으며, 덕행학교가 처음으로 한 것은 여왕폐하의 건강을 기원하는 특별기도 또는 우리 주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감사기도였는데, 요구되었던 동기에 따라서 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4. 이 도시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동안, 자신 스스로 공공 질서에 반하는 어떤 행동을 했거나 또는 어떤 공모를 권유했는지, 자신이 직접 했는지 혹은 학생들을 통해서 했는지, 노동자들에게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항상 이 도시의 빌야 데 그라시아에 위치한 집에 머물렸으며 언급한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이 도시에 없었고 그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5.자신의 제자들이 그런 일련의 사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이렇게 말했다. 몰랐다. 그리고 제자들 중 상당수가 노동자들이었음에도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당국에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6. 4월 23일 이전에 마지막으로 공공질서가 동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없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학교 수업을 할 때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관계당국을 존중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며, 항상 가르쳐온 것처럼 시민들이 의견을 표명하고자 한다면 절차를 통해 처리하도록 권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술 내용을 그 앞에서 읽었고 이를 재판관과 함께 승인하여 서명하였다. 나는 이 모든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비서, 에세나로(Dr. Ezenarro)</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공증인, 아구스틴 오비올스(Agustin Obiols)<br /></span><div><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div></div>
<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2pt;">" 학교"에 대한 바르셀로나 주교관의 교회 법원에 출두한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의 진술 내용</span></span><br /><span style="font-size: 14pt;"><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854년 4월 6일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br /><span style="font-size: 12pt;"> 1. 각하의 명령에 따라 즉시, 빌야 데 그라시아의 솔레(Sole de Villa de Gracia)가에 거주하며 42세라고 자신이 말한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가 출두하여 규정된 방식에 따라 질문한 내용에 대해 진실만을 말하기로 법정 선서를 했다. 그리고 덕행 학교의 교장직을 맡았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그렇다고 말했다.</span><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2.앞서 언급한 학교에서 가르친 교의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교의는 덕행 교리서의 내용과 동일하며 주교와 시당국의 승인을 받아 인쇄하였고 산 아구스틴 성전에서 교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것을 모든 바르셀로나 시민이 증언할 수 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3.덕행학교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히는 교의를 전파했거나 또는 여왕폐하의 정부에 맞서는 말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학교는 공공질서에 반하는 교의를 전파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언제나 사랑, 충실, 공경 그리고 모든 관계당국에 대한 맹목적인 순종을 가르쳐 주입 하면서 항상 관계당국의 가장 준엄한 규칙을 지지했으며,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사회 질서 안에서 각 사람에게 정해 주신 주인과 군주, 이외 정상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강조했다. 각 사람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상태에서 더 높이 오르고자하는 갈망과 취향을 자제하고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면서 자신을 성화하도록, 충족할 때까지 이 교의를 반복해서 가르쳤다. 그리고 둘째 질문과 관련해서는 항상 성전에서 부적합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말을 삼갔고, 교회 전례서에 따라 여왕폐하(하느님께서 항상 지켜주시기를)의 건강을 위한 청원기도에 대해 유일하게 구체적으로 언급하엿다.이것은 특별한 동기가 있을때 했고, 공적으로 했던 몇 가지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다고 했으며, 덕행학교가 처음으로 한 것은 여왕폐하의 건강을 기원하는 특별기도 또는 우리 주 하느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감사기도였는데, 요구되었던 동기에 따라서 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4. 이 도시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한 동안, 자신 스스로 공공 질서에 반하는 어떤 행동을 했거나 또는 어떤 공모를 권유했는지, 자신이 직접 했는지 혹은 학생들을 통해서 했는지, 노동자들에게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항상 이 도시의 빌야 데 그라시아에 위치한 집에 머물렸으며 언급한 사건이 발생한 당시에는 이 도시에 없었고 그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5.자신의 제자들이 그런 일련의 사건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이렇게 말했다. 몰랐다. 그리고 제자들 중 상당수가 노동자들이었음에도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당국에 체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6. 4월 23일 이전에 마지막으로 공공질서가 동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과 어떤 소식을 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없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학교 수업을 할 때에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 관계당국을 존중하도록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며, 항상 가르쳐온 것처럼 시민들이 의견을 표명하고자 한다면 절차를 통해 처리하도록 권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술 내용을 그 앞에서 읽었고 이를 재판관과 함께 승인하여 서명하였다. 나는 이 모든 진술이 사실임을 증명한다.</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br /></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비서, 에세나로(Dr. Ezenarro)</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span></div><div><span style="font-size: 16px;"> 공증인, 아구스틴 오비올스(Agustin Obiols)<br /></span><div><span style="font-size: 12pt;"><br /></span></div></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