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칠 줄 모르는 설교가
프란치스코는 스페인을 포함한 유럽에서는 그리스도적 생활의 쇄신만이 진정한 복음화 사업이라고 여겼던, 지칠 줄 모르는 설교가요 선교사였다. 스스로 분명히 언급했듯이 복음 선포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 중의 몇 가지가 이 분야에 있어서의 그의 많은 활동들을 시대와 장소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적절히 적응할 수 있고 적응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사실상 프란치스코는 사도직의 접근 방법을 폭넓게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외부 환경의 요청에 따라 강론과 연설, 그리고 9일기도와 축일 때의 설교 등 전통적인 방법에 전력을 하였다. 그것은 성사 집전과 함께 그의 사도직 활동의 첫 번째 열매였다. 그리고 그 후 즉시 대중 선교(1838~1840년)에 몸 바쳐 일하였으며, 이비사섬으로 추방을 당하고 다시 자유를 얻게 된 후에도 열정을 갖고 이 일을 계속(1864~1866년)하였다. 사실상 대중 설교는 그가 다른 어느 사도직보다도 우선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것이었고, 또한 그 결과로 볼 때에도 그의 사도직 활동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수단이었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리고 팔마와 같은 대도시에서 1860년부터 시작한 그의 설교 활동은 더 큰 사회적 반응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인정하고 있듯이 대중 선교에서 얻었던 것과 같은 분명하고 확실한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의 연설이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특별한 힘이 있었기때문에 언론과 성직자들의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고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