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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에 대한 열정(p14-17)신학교의 엄격한 교육과 일상생활
작성자 배영미(모니카)
작성일자 2022-07-04
조회수 1168

신학교의 엄격한 교육과 일상생활

 

 

                       

                   1828년 여름방학이 끝났을 때,

17세의 프란치스코는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바치고,

사제직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신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아

영성적인 수련을 쌓아야만 되었는데,

비록 출가한 누이 로사가 도와준다 하더라도

그의 가족은 기숙사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었다.

마침 고향의 본당 사제인 후안 캄프스(Juan Camps) 신부가 작성한

그의 품행에 대한 호의적인 보고서와 추천서로

그는 1828년 9월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 장학금은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1828년 가을에 레리다 신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예기치 않게 학업을 중단하게 된 1832년 봄까지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인문과 철학 과정 3년, 그리고 신학 과정 1년을 포함한

4년 동안의 학업성적은 장상들과 교수들을 크게 만족시켰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혀 있는

계획표, 생활 시간표, 성적표들이 웅변적으로 증명해 준다.

 

 그가 지낸 신학교에서의 4년은

매일의 책임을 완수하기 위하여 끈기와 근면을 필요로 하는 고된 기간이었다.

레리다 신학교의 양성 교육은 고되었고, 잠시도 쉴 만한 여유가 없었다.

생활 시간표는 단조롭고 과중하여 거의 군대식이었다.

공부, 공동 기도, 강의, 공동 오락 시간 등 엄한 규칙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른 아침의 기상은 학생들의 부족한 수면 시간을 사정없이 빼앗아 버렸고,

식사는 한창 자라는 젊은 육체에 필요한 만큼의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했다.

이 모든 어려움 외에도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레리다 지방의 맵고 긴 추위가 신학교 복도와 방들을 휘몰아치곤 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런 종류의 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확실히 영웅적인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는 이 모든 것을 자기 성소에 포한된 것으로 믿고,

또한 그의 포부를 성취하고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감수해야만 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4년의 준비 기간 동안에

프란치스코의 대인관계는 신학교의 규칙에 의하여 제한되었는데,

그는 자기 가족과 레리다의 종교 분위기 외에는

그 누구와도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생에 대한 자신의 계획에 대하여 숙고할 시간을 넉넉히 가질 수 있었다.

자기 인생의 진로를 가능한 한

가장 구체적인 방법으로 모색하기 위하여 아주 충실히 궁리하였으며,

자신의 열망과 능력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그에게는 사제직과 사제라는 사회적 위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리한 점들에 대해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예정보다 조금 빨리, 1829년 12월 19일,

철학과 두 번째 과정 초에 그는 성직의 입문인 삭발례를 받았다.

프란치스코가 21세가 되었을 때는 자기 인생에 대하여 완전히 책임 있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성숙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성소가 사제직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적 결혼에 있는 것도 아님을 차츰 인식하였다.

비록 그 길이 그리 명확하지 않았으나 다른 길,

즉 수도 생활에 부름을 받았음을 확신하였다.

그는 후에 자신이 수도원에 들어간 것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게 될

구체적인 사랑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수도회에서 그 길을 찾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