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생명나무와 하느님의 어좌에서 흘러나오는 물
강 이쪽저쪽에 있는 생명나무
동판화 19
1. 두 번째 질문 : 우리의 후각도 역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까?
그렇다. 후각도 다른 모든 감각들처럼, 인간이 상상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완전하고 순수하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장소에서 사람들이 완벽하게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안배해 놓으셨는데, 인간이 자신의 상태와 본성에 알맞은 능력에 따라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때에, 영혼의 어떤 능력도, 몸의 지체나 부분들이나 감각들이 채워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광스럽게 된 몸들이 각자 자신의 고유한 향기를 발산하고, 어린양의 어좌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수의 강이 늘 신선하게 유지가 되어서, 이 물 덕분에 불멸의 꽃들이 시들지 않는,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믿는것은 오류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이 꽃은 천상 시민들의 시각과 후각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상에서 실천한 성덕들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들이 각자 고유하고도 특징적으로 받은 우유적 영광의 선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런 우리의 견해에 근거가 되어주는 티리니(교부)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본다.
2. 사도 요한은 생명수의 강(아랍어 사본에서는 바다라고 번역했다)을 보았는데(1절), 이 강은 살아 있고 생명을 불어넣는 물로 계속 채워져 있는데, 이 물은 높은 곳에 있는 도성의 한가운데에 눈에 띄게 있고,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로부터 흘러나와, 광장의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강은 즐겁게 하고 주민들이 사용하도록 도성의 모든 광장의 둘레를 흐른다.
이 강은 두가지 유용성이 있는데, 즉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고(17절), 그리고 강 이쪽 저쪽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물 덕분에 열매를 맺어 배고픈 이에게 양식으로 내어 준다(2절).
루페르토와 성 암브로시오는 이 강을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 즉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는 성령으로 이해한다. 리카르도와 요아킴은 이 강을 성령의 은총과 은사로 이해한다. 알카사르와 다른 성경 주석가는 이 강과 생명나무를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명확한 현시와 환희로, 모든 성인들에게 부어주신 풍성한 선과 즐거움으로 이해한다. 즉, 이 선은 영혼에는 기쁨, 평화, 고요, 즐거움, 만불에 대한 인식과 지식이고, 육신에는 완전한 건강, 활력, 강인함, 민첩함, 투명함, 섬세함, 고통을 느낄 수 없음 등을 말한다. 이 선은 첫째로 성인들이 마치 감로주와 신들의 불멸의 음식을 먹는 것처럼 자신의 갈증을 완전히 채워주고, 모든 갈망을 충족시켜 즐겁게 하고, 끊임없이 그것에 도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들째로 아주 맛좋은 생명을 주는 사과로 성인들에게 풍부한 영양이 되고, 살을 찌우고, 튼튼하게 하며 불멸의 사람이 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사과는 효과가 크기때문에, 천상의 진복자들이 매우 작은 잎만 먹어도 그들은 즐겁게 되고 영양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작은 나뭇잎을 잠깐만이라도 즐길 수 있다면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고 튼튼한 건강을 얻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그들은 이 생명나무를 지상 낙원에 있던 저 생명을 주는 나무에 비유하며, 천상 낙원의 모든 나무는 생명과 불멸성을 주는 생명의 나무로 언급한다. 여기서 성 아우구스티노, 성 안셀모, 성 로렌조 유스티아노와 다른 성인들은 이것을 문자 그대로 천상에 있을 참된 강, 참된 나무들, 참된 사과들, 참된 꽃과 향기로운 것들, 즐겁게 해주는 것들 그리고 모든 성인들의 육신의 시각과 후각과 미각과 촉각을 영원히 즐거움으로 만족하게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이것은 쉬운 일로, 육신의 본성에 잘 맞고 여러 계시를 통해서 확인된것이다.
다음은 성 토마스, 리카르도와 바라디오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성 암브로시오와 바실리오와 다마스세노에게서 발췌한 것으로, 우리 세계에서 바람이 이리저리 부는 것처럼 지고한 천상계에도 바람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천상의 진복자들이 하늘에서 단단한 성벽에 붙어 있는 것처럼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성인들의 모든 육신 감각을 육체적으로 즐겁게 해주는 영원하고 천상적인 물, 정원, 열매가 또한 왜 있을 수 없는가? 성 토마스와 에스코토, 도밍고 소토, 헨리코, 마요르,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을 연구하고 따르던 프란치스코 수아레스와 요한 살라스는 하늘에서 그렇게 기쁘게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더욱이 이 천상 나무들은 다달이 새로운 열매를 맺고, 이 강은 언제나 새로운 물을 실어오는데, 이는 진복자들에게 끊임업이 즐거움과 행복을 새롭게 해주는 것을 상징하고, 이 행복은 항상 완벽하고 완전하며 매달, 매일,그,리고 매시간 이 기쁨이 그들에게는 첫 날과 첫 시간처럼 매우 새롭고, 달콤하고, 즐겁게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몇년이 지난후에도 작은 흔적의 노화, 싫증 그리고 지나침의 표징이 하나도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에제키엘서47장에서 말하는 강과 나무는 성경의 신비적 해석으로 보면, 천상의 기쁨의 강과 생명의 나무들을 상징했다. 야고보 알바레스 데 파스는 비유적으로 이 모든 것들이 흐르는 물가에 있는 의인들의 마음속에 심어진 완덕에 적용했다. 이 완덕의 뿌리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고, 그 가지는 덕행이고, 그 잎은 하느님의 계명이며, 그 열매는 특히 성령의 열두 열매들인 주요 덕행들의 실천이다. 그와 같은 나무, 강물, 그리고 꽃들이 있다는 확신이 부적합한 것이 아니라면, 궁전과 도성이 있다는 것 역시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