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교회를 위해 『하느님을 대항한 씨름』
사탄은 몇 세기 전부터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로마 교회를 거슬러 고발과 고소를 일삼았다.
모든 시대에 밤낮으로[묵시 7,15; 20,10] 되풀이한 이 불평들이
지고한 재판관을 여러 번 흔들어 깨웠다.
이 보고들은 거짓이 아니었으므로 검토하기 위해 모인 위원회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앉아 우리의 소송을 재판하였다.
한없이 올바르신 재판관은 우리 문제를 변호하도록 우리를 부르지 않고서는
재판할 수 없었으며 해명을 듣지 않고서는 단죄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동굴 속에 숨어서 밤낮으로 뜬 눈으로 몇 주 몇 달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 교회에 대해 변호하기 위해
소송 상태를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4. 이 깊은 침묵과 고독은 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에 매우 알맞고 적합하였다.
나는 내 직무로 그들의 고소에 응답해야 했으나 그것은 불행하게도 단순한
중상모략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거짓 보고가 아니었다.
오히려 뉘우치지 않은 중죄, 보상이 없는 엄청나게 큰 범죄,
불행하게도 우리 가운데 허용되면서 시정되지 않은 추문에 근거한 진정한 고발이었다.
25. 고소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아주 짙은 어두움이 드리운 검은 망토로 뒤덮인 쓸쓸하고 으스스한 한 밤중에,
습한 땅 속에서,
저 음침한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침묵 속에서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듣고 있었다.
고소인들이 말하기를,
수세기 전부터 우리에게 내린 자비를 남용해 온 은혜를 모르는 백성이며,
우리가 저지른 범죄는
우리가 하느님을 신뢰하는 종교를 보존하는 데에 합당치 못하다고 말하였다.
그 죄는 유대인의 신을 죽이는 죄, 동방 정교의 분리, 개신교의 혁명,
마호메트의 오류와 아직도 죽음의 그늘 속에 잠자고 있는 이방인 나라들의
거대한 군중의 어두움보다 훨씬 더 크다.
주님, 당신 정의의 저울로
그리스도교 백성이 저지른 잘못과 추문과 유대인들과 개신교인들 그리고 동방교도들과
이방인들이 저지른 잘못과 추문을 비교하시고 저울질해 보십시오.
어떻게 균형과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지 보게 되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범죄의 무게가 그리스도교 백성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보실 것입니다.
주님, 교회를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썩어 문드러진 가지가 뻗어있는 생명의 나무를 잘라내소서.
당신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하는 교회의 썩은 나무를 깨끗하게 해 주소서.
[묵시 22,2; 다니 4,10-11]
가톨릭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유대인들, 동방 교회 신자들, 개신교인들, 노아의 홍수로부터
당신의 자비를 기다리는 이방인들의 거대한 군중이 성장 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주님, 이 신성한 나무가 잘 자라게 해주시고,
지구의 내 극단까지 가지가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게 해 주소서.
또 고집 센 가톨릭 신자들과 미지근하고 게으른 사제들인 합당치 못한 구더기들을
그 둥지에서 빼내 버리소서.[묵시 22,14-19]
그들은 나무가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어 나무가 곧 썩어버릴 것입니다.
26. 이 고소가 사실적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우리 적들이
유령인지 아니면 단순히 상상을 고발하는 자들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동굴을 나가 언덕 위로 올라가서 커다란 바위 꼭대기에 탑을 세웠다.
현실을 살펴보는 동안,
나는 동기에 집중하고자 내 몸에 신경 쓰지 않고 시야를 고정하여
목적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작은 문을 닫았다.
여러 차례 대문에 담을 쌓고 창문에 창살을 대고
사람들과 전혀 소통하지 않은 채 40일 동안 은거하며 지냈다.
이를 본 적들은 내 생활양식을 문제 삼아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추문이 사실이라면 내가 원인이었다고 고백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방법으로는 일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변호한 소송은 이 희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소송을 알지 못하면 변호를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위해서 은수 생활이 아주 적합하고 필요했다.
27. 이러한 동기가 은수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추문에서 나를 자유로워지게 하였다.
아름다운 겨울날 안개가 걷히고 해가 비칠 때면 햇살이 내 동굴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여름 아침에는 천체에서 퍼져 나오는 빛이 들에 핀 꽃들을 시들게 하며
노을이 진 후에는 시원한 북향이 한낮에 뿜어낸 열기를 식혀준다.
봄에는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꾀꼬리가 솔새처럼
황홀한 콘서트로 활짝 핀 자연의 아름다움을 관상하도록 사람들을 초대한다.
가을에는 신선한 아침 이슬이 작렬하는 열기를 누그러트리고
밤에는 구름을 살짝 비켜난 달이 나를 비추려 수방으로 들어온다.
해마다 찾아오는 계절에 나는 창문을 열고 망원경의 초점을 멀리 맞추어
겨울, 봄, 여름, 가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을 관상한다.
하느님의 옥좌 앞에서 우리를 고소한 범죄자들을 찾아내기 위해
사방곡곡을 살피면서 철저히 조사하려고 내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28. 내 몸은 비록 이 탑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자유롭게 왕래하며 여행할 수 있었다.
이 여행 중에 적들의 고발과 법적 정차를 초래하는 범죄 내용을 담은 고소장을 내 손에 들고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로마 바티칸에 내 방을 정해 놓고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의 궁과
가톨릭 왕자들의 궁정들을 돌아다녔으며,
모든 나라와 특히 가톨릭 종교를 알고 실천하는 모든 국가를 여행했다.
나는 복음의 횃불을 들고 우리를 고소한 범죄자들을 찾아 다녔다.
로마 가톨릭 백성과 성직자들의 삶을 고려하여 성찰하면서
그리스도인이 살고 있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고소장을 읽었다.
나는 언제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우리의 본보기로 삼아
그들의 행동과 일, 생각과 계획에 맞서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29. 나는 모든 부분에서 덕을 찾다가
거룩한 곳인 그리스도교 백성들 가운데서 범죄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다니엘 [마태 24,15; 다니 9,27 12,11]
예언자가 예언한 대로 비통할 만한 증오가 있었다.
나는 이 증오가 사건을 통해 벌어진 사악함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깊숙이 숨어있는 악의 신비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재난은 거룩한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 이미 예언되었으며
모든 공범자들을 찾아 그들이 지은 모든 범죄들을 낱낱이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의심한 바 없이 그 범죄자들은 우리 안에 있으며
그들이 저지른 악행의 소리가 하늘까지 닿았다.
이들은 이 소송을 재판하려고 옥좌에 앉아 계시는 지고하신 심판관을 깨웠다.
아! 그들은 고소당했다.
재판관이 주신 수많은 은총과 선과 관용의 표징들을 무시한
고집 센 사람들을 위해 재판관 앞에서 그들을 대변해 줄 변호인은 누구일까?
지고한 재판관은 거룩한 곳에서 이 재판 절차의 근거가 되는 사악함을 찾았다.
그것은 신비이다.
그리고 이미 말한 대로 그것을 찾기 위해
더 멀리 갈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범죄자들이 차츰 드러날 것이다.
30. 여행에서 돌아와서 내 몸을 가둬 놓았던 오두막의 흙 담과 철창을 부수고
다시 슬프고 음울하고 침침한 지하로 들어갔다.
고통과 슬픔으로 지친 영혼에게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지상 예루살렘의 증오에 통곡하고 신음하기[에제 21,17 참조]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였다.
나는 몸을 떨면서 눈에는 눈물이 뒤범벅되어 바닥에 얼굴을 대고
하느님의 옥좌 앞에 엎드려 사제로서 하느님의 정의에 대항하여 소송에 대한 변호를 하였다.
그때 재판관의 손에 있는 복수의 도구를 빼앗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며
지금도 하느님 아들의 귀한 피로 재판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31. 이것은 제단의 일을 맡은 사제의 합당한 직무이다.
그러나 변호를 위한 나의 수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회개도 교정도 보상도 되지 않는 가장 가혹한 범죄와 혐오스러운 잘못을 고백하며
겸손한 자세로 기도를 바치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주님, 저희는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는 죄를 지었습니다.
당신의 사제들과 당신의 백성을 다스리는 위정자들
그리고 당신의 백성들이 단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는 당신 현존 앞에서 죄인들이며
우리의 죄들로 인해 당신 적들이 노예가 되어 당신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은총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든 것 뿐 아니라 우리는 너무나 많이 당신의 관용을 남용했으므로
당신의 자비를 받기에는 합당치 못합니다. “ [다니 9,13-19 참조] 하고
하느님 앞에서 말씀 드렸다.